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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겨진 후회
  글쓴이 : 강다은,    등록일 : 2009-08-31,    조회 : 5960
 

남겨진 후회

                                       


누구나 살다보면 엄청 후회되는 일이 한두 번쯤은 생긴다. 즉 지나고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땐 정말 심각해서 ‘내가 병신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땅을 치게 만드는 얄미운 경험 말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한순간의 판단으로 인생 전체를 망쳐버리는 아주 무서운 선택이나 훗날 ‘후회’의 의미를 엄청 부각시키는 선택도 있겠지만, 어른이 아닌 우리들한테는 꽤 거대하게 느껴지는 일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덩달아 꼭 그 일이 옳고 그름에 대한 후회를 떠나 ‘그때 내가 그렇게 했더라면 훨씬 멋있었을 텐데.’하는 사소한 자존심 문제도 후회의 대열에 충분히 끼게 되는 법이다.

나 또한 그 자존심문제로 현재까지 마음 한구석 찜찜함으로 남아 있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가끔 커다란 돌덩어리로 나를 눌러 그 경험을 다시 회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그 경험을 소설 쓰듯 화려하게 바꾸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곤 한다.

이렇게 가끔 나에게 격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꼽자면 열손가락도 모자라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2년쯤 있었던 일이다.

2년 전 그때 난 중학교 1학년이었다. 정확한 날짜까지 기억하는 그 일은 11월20일 일어났다.

그 당시, 우리 반에선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애들이 좀 많아 여러 가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곤 했다. 선생님께서는 서로 더 불량해지려는 아이들 때문에 애를 먹곤 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진짜 멀쩡하던 애들마저 물이 들어 불량배식의 품행에 빠지는 아주 이상야릇한 유행이 반 전체에 퍼졌다는 것이다. 내 경험이란 바로 이런 애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날 3교시때, 수학선생님이 별안간 사과를 가지고 오셨다. 아마도 입체도형개념을 설명하려고 하신 것 같다. 그리고 사과뿐만 아니라, 칼, 접시, 컵, 모래 등등 여러 가지 재료도 함께 가져오셔서 아이들의 호기심에 불을 붙였다. 선생님께서는 그 재료들을 다 교탁위에 올려놓고 잠시 교무실에 갔다 온다며 자리를 뜨셨다. 그때부터 나를 지금까지 힘들게 하는 사건은 시작되었다.

여자애들이건 남자애들이건 공부에 별 흥미가 없고 수업을 망치려고 작정한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부재는 장난기를 발동하게 하는 법이다. 선생님이 교무실로 자리를 뜬 후 ‘저 사과는 반드시 어떻게 되고야 말겠다.’란 내 예상은 딱 맞아 떨어졌다.

갑자기 원래 불량끼가 있었던 남자아이와 멀쩡하다가 어느 순간 물든 여자아이 둘이서 괴물 같은 웃음소리로 교실을 가득 채웠다. 그러더니 자신들이 무슨 영웅이라도 된 듯 한껏 폼을 잡더니 그 사과를 세 토막으로 잘랐다. 거기까지 다다르자 이미 몇몇 아이들은 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각들 중 하나는 모래와 섞었고, 하나는 접시위에 나머지 하나는 컵 안에 그대로 쑤셔 박아 놓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아까보다 더 큰 괴물 웃음소리로 교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러자 이번엔 더 많은 아이들이 따라서 폭소를 터뜨리며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 반이었다. 이렇게 기괴망측한 행동이 허용되는 유일한 공간말이다. 그렇게 반 아이들 모두 신이 나서 그 불량배 아이들에 동화되어 가고 있을 쯤 선생님께서 오시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쥐죽은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한 불량배아이는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협박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교탁위에 놓인 엉망진창을 본 선생님의 반응은 보지 않아도 뻔 한 일이었다.

“이거, 누가 이런 짓을 해 놨어? 빨리 안 나와!”

선생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이성을 상실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 중 누구도 불량한 아이들의 협박에 자유로울 수 없었고, 모범생중 하나인 나도 이일을 보며 재미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선생님께서 ‘누구니? 빨리 말해줘.’라는 애원의 눈빛을 나에게 보내셨고 나는 그 눈빛을 피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내 마음을 바꾸게 한 것 결정적인 말을 바로 선생님께서 하셨다.

“야, 너네반만 이거 못 보여줘도 괜찮아? 엉? 이렇게 되면 시험문제 유형 하나 놓치는 거야! 나중에 찾아와서 다른 반 애들만 테크닉을 알려주었네. 어쩌고저쩌고 하지 마라. 난 모르는 일이니까. 이 무식한 것들아. 지금 시험이 며칠 남았다고 쯧쯧쯧.”

선생님께서는 이제 주사위는 내손에서 떠났다는 말씀을 아주 당당하게 하셨다.

‘아뿔싸! 시험.’

내가 미처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게다가 모형문제가 시험에 출제된다면 난 그 기회를 허무하게 놓쳐버리는 것이다. 갑자기 시험점수가 눈앞을 왔다 갔다 하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학원에서 하이레벨의 문제를 팔이 아플 정도로 풀지만 그래도 학교시험은 학교수업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학교는 한문제만 놓쳐도 수십 등이 내려간다. 난 그동안 밤을 세면서 공부한 것이 다 날아간다는 생각까지 미치니 온몸이 서서히 마비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중1때는 지금과 달리 공부에 모든 것을 걸듯 공부에 매달렸고, 과학고 준비까지 했었다. 1점에도 고지식할 정도로 벌벌 떠는 그런 아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수업은 15분밖에 남지 않았고, 마음이 급한 나와 달리 선생님께서는 ‘너희 반은 문제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을 거야!’란 비장한 각오라도 하신 듯 수업은 하지 않으시고 팔짱만 끼고 계셨다. 순간 나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불량배들이 내 점수를 깎아 먹으려고 작정을 하고 있는데.......

내 특유의 성질은 곧 분노에 불안의 감정까지 더해져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우리 반 아이들을 한번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불량배들의 뻔뻔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선생님을 불렀다. 우리 반 애들의 패턴, 선생님이 아무리 무서워도 1분만 지나면 본래대로 떠들고 장난치는 개념 없는 아이들이란 걸 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의 멈출 줄 모르는 소름을 이용해 그 소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미주알고주알 선생님께 모두 일러바치니 작년 추석에 먹은 송편이 내려가듯 속이 후련해졌다. 그러나 그런 후련함도 잠시 불량배처럼 되고 싶어 안달했던 여자아이가 날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과 마주쳤을 때 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거야, 난 정신없이 떠들고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면서 현기증을 느꼈다.

“너네 다 앞으로 나와!” 선생님은 사고의 주동자인 네 명의 아이들을 불러 놓고 드럼스틱을 가져와 평소의 힘보다 10배는 더 세게 후려쳤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 앞에서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이었다. 선생님께 맞으면서도 그중 한 여자아이는 살기등등한 눈으로 날 째려보더니 옆에 있는 남자아이에게 뭐라 뭐라 주절주절 거렸다. 무서웠다. 제발 수업이 끝나지 말고 쉬는 시간 없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 그 무서움의 감정이 한성격하는 내 성격을 부추겨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뭔데!” 나는 일부러 선생님이 들으라는 듯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그 여자애한테 소리를 질렀다. 그 애가 반응이 없자 겁도 없이 난 다시 한 번 비웃 듯 한 말투로 “왜? 할 말 있으면 해봐?”라고 말했다. 어디서 이런 배짱이 생겼는지 그 애를 보면서 낄낄 웃기까지 했다. 내가 그 아이를 공격하는 이유는 그 아이는 날라리도 아닐뿐더러 나같이 평범한 아이인데 괜히 날라리흉내를 내고 다니는 아이라 하나도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기 초엔 좋다고 붙어 다니기까지 했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우리 반의 기괴망측한 물이 들어 그렇게 변했고, 나는 그런 유치한 장난에 물들 정도로 한가한 아이가 아니라 꿋꿋하게 모범생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내가 가장 겁나는 건 날라리 남자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내가 여자라 그런지 기분 나쁘다는 듯 바닥에 침 한번 뱉고는 복도로 나가버렸다. 원래 노는 아이들이 그런 쿨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여자아이들이 나를 흰자만 보일 정도로 째려보았다. 하도 째려보는 통에 눈에 핏줄까지 섰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한 실핏줄이 툭툭 불거진 눈을 해가지고는 내 앞으로 다가와 나를 확 밀치더니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다 내뿜었다. 그러면서 학교 끝나고 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자는 놈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옛말이 떠오르면서 난 여전히 건방진 말투로 ‘싫은데’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듣도 보도 못한 욕이 모두 나에게 쏟아졌다.

“너, 미쳤니? 선생님한테 혼나는 애를 보고 웃으면 어떡해해!” 내 친구들은 날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했다. 미옥이는 나에게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이것이 몇 개냐고 까지 물어보았다.

“눈이 빠지게 째려보는 게 너무 웃겨서 그렇지?”

내가 매사 긍정적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친구들 말대로 너무 공부를 하다 보니 정신이 나갔는지 6교시 수업까지 끝내고 청소당번이라 교무실 청소를 마치고 매일 그랬던 것처럼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까 그 아이가 친구 한명과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아까 수학시간의 일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갔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이없게도 교무실에 가자고 했다. 선생님께 따져보자는 것이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다. 교무실에 끌려가야 할 아이는 그 아이인데 나를 교무실로 끌고 가겠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 애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일단 내가 자기를 보고 쪼갰고(웃었고), 야렸고(째려봤고), 꼬질렀다(일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빡치게(화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더 어이없는 것은 선생님은 항상 자기처럼 날나리가 아닌 공부 잘하고 얌전한척 하는 애들 말만 믿으니 만약 선생님이 내편이라면 우리엄마한테라도 직접 전화해서 자신의 억울함을 벗겠다면서 온갖 으름장을 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3시30분이면 집에 도착해야 했을 내가 4시5분까지 그 애들이랑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솔직히 그때 마음만 먹으면 그 아이들을 피해 집으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꾸 억지소리를 하는 것을 들으니 그 애를 가만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노로 가득찬 눈으로 씩씩거렸다. 하지만 난 그 자리에 석고처럼 굳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받아쳐서 싸우는 것도, 그렇다고 집에 가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바로 엄마, 엄마가 문제였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서 싸운다면 그 애는 당연히 교무실로 달려갈 것이고, 선생님한테 있는 소리 없는 소리 지어내며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 할것이다. 혹여 선생님이 내팔을 들어준다해도 아니 사실을 말했고, 웃은 죄밖에 없는데 당연히 내가 이기는 건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모든 선생님들이 다 그렇듯 무슨 사건의 해결은 항상 부모들한테 미룬다. 내가 잘했든 못했든 선생님은 집으로 전화를 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다은이가 사실 조금 웃은 것 밖에 없었는데 그 애가 밀치면서 욕을 했다는 군요. 호호호 그래서 어쩌고저쩌고(중간생략) 호호호 다 처리 되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피해자이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선생님께선 말씀하시겠지만 엄마는 전화를 끊는 즉시 하이톤으로 내 이름을 부른 뒤 내가 녹초가 될 때까지 잔소리를 늘어 놓을것이다.

“너, 엄마가 그런 애들 보고 웃지 말라고 했지.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어. 내가 헤프게 웃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넌 언제 엄마 말을 알아들을래.”

웃음, 그 행동 하나가 모든 승리를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 애가 하는 욕지거리를 모두 다 들을 수밖에 없다. 집에 가려니 발목 잡는 엄마도 밉고, 그 엄마 때문에 벙어리가 된 나는 더욱더 싫어 어떻게 해보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애앞에만 서면 저절로 그 애의 머리카락이 뽑혀나가는 마술 같은 것은 판타지소설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결국 알량한 자존심이 그 자리에 한 시간 동안 있게 만들었다. 내가 끝까지 버티고 있으니 그 아이들도 지쳤는지 재수 없다며 머리를 두 번 쥐어박더니 도망가 버렸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심한 복수였다.

정말 그 자리에 그렇게 서있으려니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바로 내가 처음에 언급한 후회라는 것이다. 나는 그때 내가 부당하게 아이들에게 욕을 먹고 밀쳐지며 머리를 쥐어 박히는 그런 부당함만 생각했어야 했다. 괜히 쓸데없이 ‘엄마한테 혼날까봐’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에 발목 잡혀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상대방차에 들이 받쳐 산산조각이 났는데 그 차를 빌려준 사람이 무서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나는 그때 했다. 내지혜가 많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경험중의 하나이다.

만약 지금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욕에는 욕이란 생각으로 똑같이 욕은 하진 않더라도 내가 당한 부당한 일에 대해서 그 애에게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그때 상황을 모두 알고 계시는 선생님이 내편인데 그이외의 부수적인 것(엄마문제 같은 것을 말한다.)엔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대처했다면 그 일이 현재까지 무지막지하게 나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그런 사건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회를 더욱 커다랗게 부각시컨건 내가 그렇게 걱정하고 근심했던 엄마의 반응이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나는 자존심에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혼자 고민 고민했다. 엄마한테 웃음 때문에 꼬투리 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꼭 털어놔야 한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 장장 세 시간이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저녁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다가가 말했다.

“엄마, 있잖아. 어떤 날라리 같은 계집애가 내가 수학시간에 선생님한테 고자질 좀 하고 웃었다고 날 때리면서 욕했다.”

이제 우리엄마는 학교선생님한테 전화를 하여 그 아이가 누구냐 그 아이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해서 그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해 난리를 칠것이다란 내예상은 허무하게 빗나갔다. 엄마는 처음엔 놀란 반응을 보이는가 싶더니 곧 하품까지 하며 남의 나라 이야기하듯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수민이가 처음엔 착하더니 요즘엔 왜 그런다니?”

그렇게 말하고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콧소리까지 섞으며 아빠를 불렀다.

“여보, 밥 차려 놨어.”

모든 기대가 무너지며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서재에서 나온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속삭였다.

“괜찮아, 그런 애들은 다 무시해 버려.”

그래도 아빠의 말은 위로가 되었다. 우라통 터진 기분이 아빠의 달콤한 충고에 녹아들어가듯 야릇하게 두기분이 합쳐졌다.

그냥 그날따라 엄마의 기분이 유난히 좋았나 보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집단따돌림은 일단 당하고 나서 피해자가 제일 먼저 가져야 할 태도는 ‘부당함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 이다. 주로 폭력이나 따돌림을 당하다 보면 피해자는 혹여 가해자가 더 심하게 폭력을 행사할까봐 말하는 걸 꺼려하게 된다. 우선 본인 자체가 ‘그러지 말라’는 대항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질 수가 있다. 부당함을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해 자신을 찌르는 칼로 보지 않고 더 큰 피해의 예방을 위한 일종의 방패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폭력은 아무리 그 크기가 작더라도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인권침해이다. 법에서도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것이 인권이라고 알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져야할 인권을 박탈당하면서 다른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레 겁을 먹는다면 피해자는 절대 그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점점 소극적이 되고, 결국 어떤 폭력도 감당할 수없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폭력도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작을 때는 모기 잡듯이 가볍게 처리가 될 것을 자꾸 방치하다 보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영영 정복할 수 없는 맹수가 되는 것이다.

뉴스를 보면 폭력으로 인해 지체장애가 되거나 후천적 자폐가 되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그런데 이런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피해자의 소극적 대처가 커다란 폭력을 낳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2년 가까이 폭력을 당했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그 아이가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을 몰랐다. 그냥 넘어가고 넘어갔던 사건들이 걷잡을 수 없는 폭력으로 발전한 것이다. 폭력의 특징 중 하나가 점점 강도가 강해지는 점층적 구조를 가졌다는 것이다.

마치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 회피란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인권을 도둑질 하라고 점점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피해를 당했을 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강하게 대처하여 또 다른 폭력을 부르지 말아야 한다. 인권은 누구도 도둑질 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자신의 인권은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강하게 대처하여 자신의 인권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